디베랴 호수에서 만난 예수님 & 153 & 베드로의 사랑 고백과 “내 양을 먹이라”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에 임한 구원과, 하나님의 나라와, 영적 세계에 대해 요한복음에 기록했다. 믿어 거듭날 때 영적인 눈이 떠지고 육의 눈으로는 볼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영적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요한복음의 마지막 21장은 거듭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을 받고 영적 세계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세상으로 보내시며 가르치시는 영적 진리들에 관한 기록이다.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1-2)
예수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다. 요한복음만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가장 먼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고, 도마가 없을 때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도마가 함께 있을 때 모든 제자 앞에 나타나셨다. 이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같이 예수님도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신다고 하시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후에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지만 세 번째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다. (14) 시몬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으러 가겠다고 하고 제자들이 동행을 한다. 7명의 제자가 배에 올라 밤새 물고기를 잡지만 날이 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5-6)
예수님께서 바닷가에 서서 배에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얘들아”라고, 아버지가 자녀들을 대하듯 제자들을 부르시고는 저들에게 물고기가 있는지 물으신다. 제자들이 예수님인 줄 알아보지 못하고 “없나이다”라고 답한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배 오른쪽에 그물을 던지면 물고기를 잡을 거라고 알려주신다. 제자들이 아무 말도 없이 바로 순종하니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고기가 잡힌다.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베드로에게 주님이시라고 말한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모습을 자세히 보고 주님을 알아본 것이 아니다. 방금 저들에게 일어난 일이 주님만 하실 수 있는 일임을 보고 예수님을 알아본 것이다. 사도 요한의 말을 듣고 시몬 베드로가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내린다. 예수님을 향한 베드로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다른 제자들은 배를 타고 그물을 끌고 육지에 이른다. (7-8) 누가복음 5장에 예수님께서 처음 제자들을 부르실 때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시고 제자들이 순종하여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물고기를 잡았었다. 제자들이 그때를 기억하며 자신들에게 그물을 오른쪽에 던지라고 하신 분이 예수님이심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0-11)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3)
제자들이 육지에 올라오니 예수님께서 떡을 준비하시고 숯불에 생선을 굽고 계신다. (9)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의 일을 할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필요한 양식을 준비해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순종하여 많은 물고기를 잡는 것에만 관심이 있으신 것이 아니다. 열심히 일하고 돌아온 제자들이 배고파할 것을 아신다. 그들을 위해 친히 아침을 준비하시고 떡과 생선을 제자들에게 가져다주어 먹게 하신다. (13) 예수님은 순종하는 삶을 사는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미리 아시고 채워주시는 분이시다. 제자의 삶을 살면서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마태복음 6 장 25-34절에 말씀하신 대로 공중에 새도 먹이시고 들풀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제자들이 순종하여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할 때 주님께서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방금 잡은 물고기를 가져오라고 하신다. 베드로가 가서 그물을 끌어 올려 보니 잡은 물고기가 153 마리나 되고 그럼에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53이라는 숫자를 통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시는 영적 진리는 무엇일까? 153 이라는 숫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완벽한 숫자이다. 이날 새벽에 제자들이 타고 있던 작은 배와, 7명의 제자가 할 수 있는 수고와, 저들이 사용하는 그물이 찢어지지 않도록 모두 고려해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최고로 많이 잡을 수 있는 물고기의 완벽한 숫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정하시고 친히 제자들이 던진 그물로 몰아주신 153마리의 물고기를 잡아 올릴 때 제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기에 153이란 숫자는 저들에게 맡겨주신 완벽한 숫자이다.
죄로 물든 세상의 가치와 죄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많고 큰 숫자를 최고라고 인정하고 높이고 추구한다. 큰 숫자를 가진 자들은 무엇이라도 된 듯 거만해지고 자랑한다. 세상의 문화와 가치로 정복당한 교회 안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예배당 사이즈가 클수록, 교인 수가 많은수록, 사역이 커질수록 모두에게 높임을 받게 되고 머지않아 당사자들도 그것을 자연스럽게 누리며 더 높아지기 위한 일로 방향을 틀고 열심을 낸다.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죄 된 사람들은 153마리가 아니라 300마리, 600마리를 잡아야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거짓 진리에 속는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153마리의 물고기를 잡으려 하지 않고 세상이 손뼉 치는 대로 점점 더 많은 물고기를 잡으려고 한다. 자신이 주도권을 잡고 더 큰 배와 더 튼튼한 그물을 준비하고,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만족시키는 일을 하려고 한다. 정작 성령님의 일하심을 방해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는 죄를 짓는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보내시는 각각의 제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열매 맺게 하실 완벽한 숫자가 주어진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일하시는 성령님께만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겨주신 완벽한 숫자의 열매를 거둘 때만 하나님과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고, 기쁘시게 할 수 있으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과 사역에 나타나는 숫자를 비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여전히 세상 가치에 묶여 자기가 주인 노릇을 하는 어리석은 죄를 짓는 것이다. 또한 제자들의 열매를 숫자의 많음과 크기로 판단하는 것 역시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이다.
153이라는 최고의 완벽한 숫자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물을 오른편에 던지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고 바로 순종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제자들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말씀과 기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로 제자들을 초청하신다. 제자들은 성령님을 따라 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중에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또한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도록 귀를 막는 죄를 날마다 회개하고 사탄의 유혹과 시험에 들지 않도록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말씀을 들으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바로 순종해야 한다. 디모데후서 2장 4절 말씀과 같이 부름을 받은 자들은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충성하고 순종함으로 부르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시고 (15)
15-17절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자신을 사랑하는지 똑같은 질문을 세 번 하시고 베드로가 세 번 답하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 목자의 사명을 주시는 장면이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저주하기까지 부인했던 자신을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대면 하는 일을 겪었다. 그 일을 통해 베드로는 자신의 죄를 마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은 그동안 수제자라 여기며 예수님 앞에 했던 행동들과 장담했던 말들을 하나도 지킬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동안 자신의 의라고 믿었던 것들, 자신의 선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실제로는 지독한 자기 사랑의 뿌리에서 나온 죄의 열매들이었음을 직면함으로 견고한 자아가 무너지는, 비로소 자신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 은혜를 받은 것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고 부르신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셨지만, 그는 아직 그 이름에 걸맞은 반석이 아님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실망하셨다거나 원망하시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가 이제는 영적 세계에 속한 진정한 믿음의 반석이요 수제자가 될 수 있도록 그를 점검해 주시고 영적 진리를 가르쳐 주시며 준비시키시는 것이다.
· 첫 번째로 예수님은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 부르시며 아가페 사랑으로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는지 물으신다. 이에 베드로가 그렇다고 하며 자신이 필레오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주님께서 아신다고 답한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어린양을 먹이라고 하신다. (15)
· 두 번째로 예수님은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 부르시며 아가페 사랑으로 자신을 사랑하는지 다시 물으신다. 이에 베드로가 그렇다고 하며 자신이 필레오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주님께서 아신다고 답한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양을 치라고 하신다. (16)
· 세 번째로 예수님은 또다시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 부르시며 이번에는 아가페가 아닌 필레오 사랑으로 자신을 사랑하는지 물으신다. 이에 베드로가 세 번째 물어보심으로 근심하여 주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고 하며 자신이 필레오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주님께서 아신다고 답한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양을 먹이라고 하신다. (17)
베드로는 예수님의 신임을 받는 수제자였다. 수제자답게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장 잘 따르고 언제나 예수님께 가장 먼저 반응하고 답했다. 본문에서도 예수님이심을 알게되자, 바로 물에 뛰어들 정도로 예수님을 사랑했고 그 와중에 겉옷을 먼저 챙겨입는 것을 보면 예수님을 참으로 공경했음도 알 수 있다. 베드로의 예수님을 향한 마음과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육에 속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 베드로는 여전히 죄로 죽은 자로 이 세상에 속해서 자신이 왕 노릇 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진리가 아닌 거짓 진리와 거짓 신념에 따라 살며 예수님과 육에 속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죄 사함을 받고, 모든 거짓을 버리고, 진리로 자유로워지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아가페 사랑을 하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제자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곧 그렇게 되기 위해 베드로가 반드시 통과해야 할 훈련의 과정 끝에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하기 위해서 베드로는 먼저 자신은 아가페 사랑을 절대로 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베드로는 수제자로 예수님의 인정을 받았고, 성령님께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하게 하셔서 예수님께 칭찬도 들었다. 그랬기에 예수님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고 믿었다. 예수님을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실제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해 순교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십자가에 죽고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리고 거듭나기 위해서 베드로는 자신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죄로 죽은 죄인임을, 죽음을 향해 달려가며 사탄의 종노릇 하는 것 외에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일을 겪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수제자로 들떠 자신의 죄를 보지 못했다면, 예수님께서 아가페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냐고 물으실 때 자신도 아가페 사랑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장담했을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예수님께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지만, 자신은 필레오 사랑으로 밖에는 예수님을 사랑할 수 없는 존재임을 예수님이 아신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정답이다! 예수님께서 두 번째 똑같은 질문을 하시며 다시 확인하시고 베드로가 똑같이 답한다.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이제 훈련을 통과했다고 인정하시는 뜻으로 자기를 필레오 사랑으로 사랑하냐고 물으셨다. 이 말씀에 베드로는 여전히 아가페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해 근심하며 그것조차 예수님께서 다 아신다고 고백한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자기가 3번 부인할 것을 미리 아시고 말씀해 주신 것을 경험하며 예수님께서 자신의 마음 중심까지도 다 아신다는 것을 온전히 믿게 되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베드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신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곧 거듭나서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하며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것을 아시기에 예수님의 어린양을 먹이라고 하시고, 예수님의 양을 치라고 하시고, 예수님의 양을 먹이라고 하신 것이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제자로 예수님의 양들을 맡겨주셨다. 베드로에게 목양하는 사명을 주시면서 왜 먼저 자기를 사랑하는지 물으셨을까? 예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야만 아가페 사랑을 할 수 있고, 예수님을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을 때만 양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먹일 수 있고, 아가페 사랑으로 양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는 선한 목자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로 믿지 않는 자들을 제자 삼을 때도, 예수님께서 각자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기 위해 봉사할 때도, 예수 그리스도를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 반드시 우선 되어야 한다. 그럴 때만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18-19)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성령님께서 오신 후에 거듭나고 성령충만을 받은 베드로가 어떻게 죽을지 이미 아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해 주신다. 젊어서는 순종하는 자가 되어 원하는 곳으로 다니지만 늙어서는 다른 사람에 의해 죽음에 넘겨지게 될 거라고 하신다. 베드로가 팔을 벌리고 남이 베드로에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간다는 말씀을 통해 베드로가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거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다. 베드로는 실제로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어떻게 죽게 될지를 알려주시고 “나를 따르라”라고 하신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가는 중에 뒤에 함께 따라오는 사도 요한을 보고 베드로가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니까?”라고 질문한다. 이에 예수님께서 “내가 다시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라고 답하신다. 베드로는 왜 사도 요한의 미래에 대해 예수님께 물었을까? 사도 요한은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 있을 마큼 그리고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인지 서슴없이 물을 만큼 예수님과 가깝고 예수님께서 가장 많이 사랑하시는 제자다. (20) 그리고 베드로와 함께 가장 가까이에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이기도 하다. 베드로는 마음속으로 사도 요한을 견제하고 있었기에 사도 요한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궁금했을 것이다. 또한 마가복음 10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좌우편 자리를 놓고 제자들이 서로 다투는 사건을 통해서도 예수님의 제자 간에도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한 갈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질문에 요한에 대해서 상관하지 말라고 답하신 것을 보아서도 베드로가 사도 요한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사랑의 마음으로 질문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20-22)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후에 깨어지는 시련을 통과하고, 예수님의 양들을 맡아 양육할 사명을 받고, 끝내는 순교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될 것에 대해 예수님께 듣는다. 베드로는 얼마나 위대한 제자인가! 하지만 그런 중에도 베드로는 동료 제자인 사도 요한을 견제하는 속마음을 바로 드러낸다. 죄 된 사람의 모습이다. 어떤 큰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일지라도 단번에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성숙을 이루며 거룩해져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가며 혼의 구원을 이루는 것은 받은 사명을 감당하여 열매를 맺는 것과 별개로 거듭난 자로서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것임을 잊지 말고 사명을 감당하는 중에 영적 성숙도 함께 이루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사역을 잘 감당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는 자가 있더라도 그것만으로 그를 온전한 자로 판단하고 높여서는 안 된다. 사역의 열매가 아닌 그의 성품과 삶에서도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거룩함을 이루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광 돌리는 참 제자는 자기의 성품과 삶 그리고 사역에서 동시에 열매 맺고 계속해서 점점 더 풍성한 열매를 맺어가는 자이다.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은 죽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셨다는 소문이 퍼졌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도 요한이 정말로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사도 요한이 머물러 있게 할지라도 무슨 상관이냐고 하신 말씀이 왜곡되어 퍼진 것이다. 이 일이 사도 요한 자신에 관한 것이고 자신도 그곳에 있었기에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었을 것이다. (23)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사도 요한이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경험한 일들을 직접 기록하였기에 그 증언이 참되다고 한다. (24)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 기록된 것 외에도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이 너무 많아서 모든 것을 기록하여 책을 만든다면 이 세상도 그 책들을 두기에 좁을 거라고 기록하며 요한복음을 마무리한다. (25)
사도 요한은 다른 복음서가 쓰이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요한복음을 기록했다. 아마도 복음이 전해지는 것, 크리스천들의 믿음과 삶, 초대 교회들, 그리고 이단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며 예수님의 최초의 제자로서 자신이 직접 목격한 일들과 예수님과 그분께 배운 진리들에 대해 더 자세하게 가르치기 위해 이 책을 기록했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영적 세계에 관해 무지한 자들을 깨우시고, 복음을 믿어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영적 세계, 곧 하나님 나라에 속한 것임을 알려 주시려고 요한복음을 기록하게 하신 것이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시라는 것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는 진리의 복음을 선포하는 책이다.